봉숭아물들이기

자작나무 일기/ 봉숭아 거름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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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꽃대감TV2 작성일21-05-14 00:00 조회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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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 거름주기
 
내가 떠나온 창원 근무지에서 맡았던 업무는 교지 발간과 정독실 격인 ‘별탑원’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남들은 교지 발간이 힘들지 몰라도 나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별탑원은 방과 후 희망하는 학생들을 독서실과 같은 별도 공간에 분산 배치해 밤늦은 시간까지 살펴주는 일이었는데 시대 분위기가 예전과 달라져 점차 느슨하게 운영되다 흐지부지되어 제 교실에서 공부하다 귀가했다.
 
그곳은 여학교라 한때 운영했던 예절 교육 생활관을 독서실로 개조했다. 본관과 떨어진 옛 음악실도 독서실로 활용했다. 학생들에게 저녁 공부방은 운영하지 않아도 주말 이틀 자율적으로 개방했다. 이용자가 적어도 때때로 청소와 환기를 시켜야 하고 학생들의 안전도 염려해야 했다. 그래도 담임을 맡지 않고 교지를 펴내고 독서실만 살피는 업무라 내게는 시간 여유가 많은 편이었다.
 
일과 중 틈이 날 때면 너른 뒤뜰을 산책하며 우거진 수목과 화초를 완상했다. 도심 여학교였는데 정원에 유실수가 많았다. 이른 봄 매화부터 시작해 순차적으로 살구꽃과 복사꽃까지 두루 구경할 수 있었다. 모과꽃도 은근히 예뻤고 초여름엔 석류꽃도 피었다. 초본에서 피우는 꽃들도 다양해 이른 봄 수선화부터 여러 가지 풀꽃이 피고 민들레를 비롯한 야생화들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내가 관리했던 별탑원 주변만도 뜰이 아주 넓었다. 수령이 오래된 벚나무가 여러 그루라 일찍부터 낙엽이 지면 빗자루로 손수 쓸었다. 봄과 가을에는 교정에 피는 여러 꽃을 구경하나 여름에 피는 꽃은 귀했다. 그래서 별탑원 주변 봉숭아를 키웠더니 여름은 물론 가을까지 알록달록한 꽃을 볼 수 있었다. 여름 뙤약볕에 봉숭아 잎줄기가 시들면 방학이라도 학교로 나가 물을 주었다.
 
삼 년 전 거제로 옮겨 오면서 몇 가지 꽃씨를 가져왔다. 그 가운데 봉숭아 씨앗도 빠지지 않았다. 첫해는 적은 개체였으나 작년부터 넓은 면적에 가득 키웠다. 교정 앞뜰에는 수목과 잔디가 식재되어 꽃을 심을 자리가 나오지 않았다. 뒤뜰은 깎아낸 산기슭과 인접해 콘크리트로 옹벽을 쌓은 비탈이었다. 잡풀이 무성한 언덕에 봉숭아 모종을 심어 김을 매주고 거름을 주어 꽃을 피웠다.

지난해 화사한 봉숭아꽃을 피웠던 뒤뜰 언덕에 봄이 되니 봉숭아 새싹이 돋아났다. 작년 가을에 꽃이 저물면서 여물었던 꽃씨가 떨어져 절로 틔운 싹이었다. 여린 봉숭아 싹은 잡초들에 치여 맥을 추지 못했다. 지난 사월 초순 비가 그친 어느 날 이른 새벽에 교정으로 들어가 낫과 호미로 제초 작업을 했더니 봉숭아 싹은 기운을 차려 잘 컸다. 이후 새싹 주변의 김을 두 차례 더 매주었다.
 
오월 둘째 금요일이다. 수업은 오전 두 시간으로 끝나 오후는 여유가 생겨 와실로 들어 간편복으로 바꿔 입고 다시 학교로 향했다. 행정실 주무관에 의뢰해 둔 두엄 포대를 수레에 실어 뒤뜰로 옮겼다. 절개지 비탈은 김을 매어 잡초는 없었으나 토질이 척박해 봉숭아 싹은 생육이 더뎠다. 언덕 비탈로 올라 두엄 포대 주둥이를 열어 꽃삽으로 봉숭아 새싹 주변에 거름을 주기 시작했다.
 
쓸모가 없는 뒤뜰 산언덕 비탈진 콘크리트 옹벽 틈새 봉숭아를 가꾸니 입체적인 공간 활용이었다. 거름을 주면서 발아율이 좋은 봉숭아 씨앗은 너무 촘촘히 자라 일부는 솎아내었다. 봉숭아 싹은 초기 생육은 더디나 김을 매주고 거름주기를 마치면 금세 잎줄기를 무성히 불려갈 테다. 앞으로 잎줄기를 더 키워 장마가 오는 즈음 다른 곳으로도 모종을 옮겨 심어 꽃밭을 넓혀갈 작정이다.

주말에 비가 온다고 하니 거름기는 땅속으로 스며들어 좋은 영양분이지 싶다. 씨앗이 싹 텄다고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잡초를 뽑아주고 거름을 내어야 제대로 자랄 것이다. 농부가 땀 흘려 작물을 가꾸듯 꽃밭도 누군가 손길이 닿아야 꽃을 볼 수 있음은 당연하다. 근무지에서 꽃을 가꿀 여가가 나고 터가 있음만도 감사했다. 내년이면 산천을 주유하며 들꽃을 완상하고 다닐 테다. 21.05.14
 



烟沙蝸室
余山 주오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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